사철 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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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수많은 소설과 평전, 동화, 산문 작품으로 잘 알려진 농부 글쟁이 최용탁이 이번에는 흙냄새 폴폴 풍기는 생애 첫 시집 『사철 어는 사람들』을 냈습니다. 누구보다 땅에 밀착해 살아가는 저자는 담담한 시어로 사멸 직전에 처한 한국 농촌의 일상과 현실을 가슴 아프게 드러냅니다. 공동체가 사라진 농촌의 쓸쓸한 현실과 울분을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자의 시에는 엄혹한 농촌 현실에 대한 고발과 함께 우리의 땅,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시편마다 진득하게 묻어납니다. 최용탁 글지가 낙관과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매일 논밭에 나가 일을 하면서 흙과 초록 생명이 주는 말없는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기력과 분노를 딛고 일어나 자연의 힘과 모둠살이의 기적, 삶의 엄숙함과 경건함을 이야기합니다. 흙과 땀이 어우러진 사유가 만들어낸 시편들마다 인간과 자연의 존엄을 느끼게 합니다.

 

작가소개

전태일문학상 수상. ‘미궁의눈’, ‘즐거운읍내’, ‘단풍열끗’, ‘아들아넌어떻게살래’ 등 여러편의 소설과 산문, 평전, 동화 작품을 썼음.

 

책속으로

남들보다 곱쟁이는 크게 나뭇짐 졌던 아버지 / 그 짐 덕에 살았습니다 / 그러니 평생 두고 커다란 짐을 지게 될 밖에요 / 모두들 가벼운 어깨 부딪치며 / 짐 진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요즘 세월에도 / 자기가 져야 할 것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 그래야 한다고 참, 시절 모르는 되풀이를 하는 거지요 / 열세 살에 가장이 된, 가장답게 호랑이를 이긴 / 아버지가 지고 온 커다란 짐 / 이제는 없는 사람의 짐입니다 – ‘커다란 짐’에서

 

툭, 앞니가 부러졌다 / 일주일째 / 아무도 모른다

- ‘쉰 살 무렵 1’ 전문

 

마침내 오늘, 우리가 간다! / 서럽고 굳세고, 영원한 그 이름 / 녹두장군 전봉준의 깃발을 세우고 간다. / 감발 치고 죽창 들고 떠났던 그 길을 / 오늘 트랙터 몰고 트럭 몰고 간다. / 척양척왜, 보국안민, 그 마음 그대로 / 갑오년에 스러진 꿈, 병신년에 이루러 간다. // 남접 북접 쓰러졌던 피 묻은 깃발을 다시 세워 / 땅끝 해남에서 서군으로, 삼천포 진주에서 동군으로 / 다시 일어나 간다, 원한의 우금 고개 넘어 / 무명 저고리 피에 젖은 새재를 넘어 / 서울로 간다. // 기다려라, 백성들 피땀으로 배불린 자들아 / 우리는 언제나 이 땅 생령들의 먹을거리 애쓰다가 / 나라가 위태로울 때면 분연히 일어났느니 / 하여, 농민이었고 또한 군인이었다. / 동학군으로, 의병으로, 독립군으로 이 땅을 지켜왔다. / 더 이상 어찌 참으랴 / 쌀값을 개 사료 값으로 만들고, 물대포로 늙은 농민을 쏘아 죽이는 / 이 미친 정권을 어찌 그냥 두랴 / 일본놈 끌어들여 갑오농민군 대학살한 민비처럼 / 아직도 구중궁궐 들어앉아 아베 놈과 요상한 협정이나 맺는 / 저 사악한 대통령을 어찌 두고 보랴. // 간다, 된서리 서걱이는 논두렁 밭두렁 너머 / 아스팔트로, 고속도로로 달려간다. / 서울 간 내 새끼 촛불 켜고 있는 광화문 광장으로 간다. / 더는 춥지 말라고, 더는 흙수저라 울지 말라고 / 더는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 없어 / 마지막 힘을 다해 이 애비가 간다, / 가을이면 올려 보내던 고춧가루 참기름 대신 / 거친 손으로 트랙터 몰고, 트럭 몰고 / 끝장을 내러 간다, 전봉준이 되어 김개남이 되어 / 새 세상을 열러 간다!

- ‘전봉준투쟁단이 간다’ 전문

작가의말

서울은 아니지만 도시로 간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레었다. 집에서는 논밭을 팔아서라도 하숙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완강히 자취를 고집하였다. 이때 이미 나는 집안을 배신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코 부모들이 기대하는 법관이니 의사 따위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자면 나를 위해 논밭을 파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최소한의, 그리고 마지막 배려였다. 거의 습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일 년이 넘었지만 내 머리 속에는 그가 남기고 간 말이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 시를 위한 순교, 처음에는 충격으로 와 부딪친 그 말이 어느 틈에 나의 화두가 되어 있었다. 그에게 그게 길이었듯이 내게도 그 길 이외의 어떤 길도 가볼만 한 삶의 길은 아니었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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