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술리의 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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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트리술리의 물소리

지은이 김홍성

출간일 2019년 7월 15일

판형 국판 변형 130 * 205

제본 종이책 〔무선제본〕

페이지 176

가격 1,3000원

ISBN 979-11-962627-7-8 〔03980〕

분야 에세이

 

 

담당 이용준 (편집국 차장) (T) 031-8086-7999 (F) 031-8086-7997

(E) cromlee21@krj.co.kr www.dasimunhak.com

(우 14057)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시민대로 383 디지털엠파이어 B동 808호

 

책소개

『트리술리의 물소리』는 히말라야 석청 구입을 목적으로 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탐방기이다. 트리술리 강을 거슬러 오르며 9일 동안 펼치는 여정으로, 골골이 깃들어 사는 원주민 부족들의 인심과 풍정을 싱그럽게 그렸다. 염소를 기르고 감자를 심고 기장 죽을 먹는 농부, 아직도 풀 짐 지는 아낙, 소주 고는 모녀, 눈길을 맨발로 걷는 셀파, 퇴락한 법당, 목 잘린 불상, 헛간에서 짐승과 같이 자는 사람들, 달밤에 처자들까지 나와 춤을 즐기는 마을, 똥 천지인 똥동네. 온통 가난하고 허름하지만 그들이야말로 비길 데 없이 순박하고 진실하다. 필자 김홍성 시인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 시적 필치, 무엇보다 변치 않는 소년 감성이 돋보인다. 시인이 직접 찍은 칠십여 장 사진 또한 서정성 넘친다.

 

작가소개

김홍성은 시인이며, 오지 전문 잡지 기자 출신으로 1991년 첫 네팔 트레킹을 다녀온 이후 매년 네팔 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순정을 발견한” 그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네팔 카트만두에 거주하면서 식당을 운영하고 히말라야 산군을 여행했으며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를 출간했다. 현재 미디어피아 전문 작가로 활동하면서 ‘피케 기행’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책소개

툴루가웅 마을은 구릉족의 마을이다. 남정네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아녀자와 아이들만 많다. 중년으로 보이는 여자가 우리의 거처로 아이를 안고 와 아이의 뺨과 목에 생긴 부스럼을 가리키며 약 좀 발라 달라는 시늉을 한다. 항생제 연고를 좀 발라 준다. 발을 다쳐서 곪은 아이도 왔다 간 후 노파가 찾아와 자기 눈을 가리킨다. 심한 눈병을 앓고 있다. 눈에 안약을 좀 넣어 달라는 이야기인 줄은 알겠는데 안약은 준비해 온 게 없어 안타깝다. 노파는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대신 분말 비타민 한 봉지를 주었더니 우리 숙소 부근에서 서성이던 아낙네와 아이들이 너도 나도 달라고 손을 내민다. 까르나를 시켜서 그들을 한 줄로 서게 한 다음 사탕을 한 알씩 준다. p. 45-46.

 

히말라야의 석청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가네 무아(먹는 꿀)이고 다른 한 가지는 나가네 무아(못 먹는 꿀)이다. 가네 무아는 사람이 먹는 꿀이다. 나가네 무아는 사람이 못 먹는 꿀이지만 야크나 버팔로 혹은 염소 등이 병이 났을 때 먹인다. 네팔 사람들은 절대로 나가네 무아를 먹지 않는다. 사람이 나가네 무아를 큰 수저로 한 수저만 떠먹어도 잠시 후 몸을 못 가누고 쓰러진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정도를 넘기면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죽지는 않는다. 거의 죽을 지경까지 가서는 차츰 살아난다. 죽을 지경에 대해서 말로는 설명이 안 되고 경험을 해 봐야 안다고 말하는 권씨는 나가네 무아를 먹고 죽을 지경까지 가 본 장본인이다.p. 62.

 

소변을 보려고 밖으로 나왔을 때 헛간 쪽으로 가 보니 벽이 없는 지붕 밑에서 사람과 짐승이 한데 어울려 자고 있다. 대들보 위에는 닭들이 앉아 있고, 마이타의 어린 조카들은 책상보만 한 누더기 속에서 새끼 염소를 껴안고 있다. 사람 기척에 놀라 일어나 앉은 마이타 동생 부부는 거의 알몸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거듭 말한다. 그러나 그들 곁의 버팔로 송아지는 뭐가 그리 미안하냐는 듯 태연자약하게 여물을 씹고 있다. 하늘의 별은 여전히 총총하다. 달은 더욱 둥두렷하다. p. 102-103.

 

주춤거리는 나를 앞질러 가는 마이타는 맨발이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슬리퍼를 벗어 버린 것이다. 눈길에 찍힌 마이타의 발자국이 불그스레하다. 자세히 보니 아무래도 피가 배어 있는 것 같다. p. 158.

 

작가의말

1991년이 언제인가? 무려 28년 전이다. 오래된 여행기여서 남의 기록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렇지가 못했다. 사진 자료까지 한 장 한 장 찾아 순서대로 배열하면서 교정지를 찬찬히 읽자니 나는 어느덧 과거의 현장에 빠져들었다. 육중하고 거대한 바위산 사이의 좁은 골짜기 저 아래로 힘차게 빠져나가는 물소리마저 다시 들리는 듯했다. 티베트와의 국경을 이룬 트리술리 강 상류의 무시무시한 절벽 비탈에 사는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염소를 기르고 감자를 심고 기장 농사를 짓는 산촌 농민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진은 묘한 것이다. 사진에 고착된 과거의 인물과 풍경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인물도 풍경도 변함없이 거기 그대로 있다. 같이 갔던 동료들과 현지 고용인들도 그곳을 걸으며 구슬땀을 뚝뚝 떨구고 있다. 네팔의 정치는 지난 30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기나긴 내전이 있었고, 왕정이 종식되었으며 내각제가 시행되고 있다. 자연과 지리적인 변화도 만만치 않다. 트리술리 하류에는 당시 공사 중이던 수력 발전소가 생겼고, 도로와 전봇대는 계속 티베트 국경 쪽 산으로 깊이 파들어 갔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나날이 늘어나더니 예전에는 오직 걸을 수밖에 없었던 길을 지프로 왕래한다. 사흘 나흘 길을 몇 시간만에 주파하게 되었으나 자동차 도로 건설 현장은 히말라야 산악 지대 전역에 퍼져 있다.

이 책은 그런 변화 이전의 모습, 즉 수백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던 히말라야 산간 오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지만 히말라야 석청을 목적으로 했던 국내 최초의 탐방이기도 했다. 히말라야 석청은 이 여행 이듬해에 안나푸루나 지역으로 향했던 두 번째 탐방에 의해 상당량이 국내로 유입되었다. 처음에는 소소한 상업적 거래가 있었으나 영리에 밝은 국내외 상인들에 의해 오늘날 네팔의 석청 산업으로 발전하였다.

 

차례

1부

고물 버스

석청

산돼지

덴지 셀파

2부

마이타 따망과 판티스 따망

노래와 춤

소주 내리는 모녀

나까네 무아

헛걸음

위스키 한모금

고까네 마을

3부

허니 헌터

허름한 축사

고까네 마을 처녀들

퇴락한 법당

훼손된 토불

하모니카 소리

4부

나까네 써

진눈깨비

한 방울의 이슬

나만 본 독수리

노천온천

고철이 된 불도저

9 thoughts on “트리술리의 물소리

  1. “잊을 만하면 떨어지는 싸락눈이 가한 충격으로 내 몸은 아주 얇은 막에 쌓여 있는 물처럼 전율한다. 또 전율한다.”

    김홍성 사진에세이 중 ”진눈깨비”

    오래 전 박인식, 최성각 선배한테 들었던 신비한 히말라야 석청 얘기도 흥미롭지만, 저자의 들머리 글이 눈길을 끈다. 이 들머리 글은 표지 디자인의 타이포그래피로 다시 태어났다.

    책은 28년전의 추억을 소환하고 있지만, 저자의 내면에서는 트리술리의 물소리가 부활하고 있다. 다시 가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저자의 심정이 한편의 산문시 같다. 이런 그리움의 경지라면 포천 우음산 우거의 낙숫물소리에서 트리술리의 물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홍성 선배의 방랑벽을 떠올리면, 가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 ”안개 위의 방랑자”와 슈베르트 ” 방랑자-환상곡”이 겹쳐 보인다. 아침에 일어나 맨 먼저 이 음반을 틀었다.

  2. 인터넷 서점에 주문한 김홍성 선배님의 사진에세이 가 도착했네요. 글자로 산을 형상화한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네팔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트리술리강은 히말라야에서 발원합니다. 시작은 차가운 빙하였지만 깊고 좁은 계곡을 노도처럼 밀고내려가 평원을 적시는 강이죠. 그 강을 따라 가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이 책은 김홍성 선배님이 카트만두에 소풍이라는 음식점을 내고 살던 시절에 떠난 여행입니다. 그 시절에 선배님은 참 많은 여행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 네팔을 갔을 때 카트만두에서 만나 맥주잔을 나누고, 누렇게 익은 보리밭길을 함께 거닐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선배님이 영영 그곳에 사실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포천 산정호수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잡으셨네요^^

    김홍성 선배님과는 학번이 까마득히 차이가 났지만 인연은 꽤 깊습니다. 에 기자로 일하던 시절, 선배님이 편집장으로 1년쯤 머물렀습니다. 네팔로 떠나기 전이었습니다. 선배님과 어울려 삼각지 로터리의 술집을 전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벌써 이십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며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3. ”비 듣는 기세가 좀 누그러진 틈을 타서 다시 걷는다. 이제 길은 수직에 가까운 천길 벼랑으로 이어진다. 여우비라고 했던가. 오랑이 시집가는 날이라고 했던가. 햇빛 속으로 비가 내린다. 창공에 뿌려지는 수백억 수천억의 빗방울들이 샹들리에처럼 햇빛을 되쏘아 온 세상이 다 휘황찬란하다.”

    ”히말라야의 석청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가네 무아(먹는 꿀)이고 다른 한 가지는 나가네 무아(못 먹는 꿀)이다. 가네 무아는 사람이 먹는 꿀이다. 나가네 무아는 사람이 못 먹는 꿀이지만 야크나 버팔로 혹은 염소 등이 병이 났을 때 먹인다. 네팔 사람들은 절대로 나가네 무아를 먹지 않는다. 사람이 나가네 무아를 큰 수저로 한 수저만 떠먹어도 잠시 후 몸을 못 가누고 쓰러진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정도를 넘기면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죽지는 않는다. 거의 죽을 지경까지 가서는 차츰 살아난다.”

    ”소변을 보려고 밖으로 나왔을 때 헛간 쪽으로 가보니 벽이 없는 지붕 밑에서 사람과 짐승이 한데 어울려 자고 있다. 대들보 위에는 닭들이 앉아 있고, 마이타의 어린 조카들은 책상보만 한 누더기 속에서 새끼 염소를 껴안고 있다. 사람 기척에 놀라 일어나 앉은 마이타 동생 부부는 거의 알몸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거듭 말한다. 그러나 그들 곁의 버팔로 송아지는 뭐가 그리 미안하냐는 듯 태연자약하게 여물을 씹고 있다. 하늘의 별은 여전히 총총하다. 달은 더욱 둥두렷하다.”

    - 김홍성 著, 트리슐리의 물소리 中 -

    평소에 그토록이나 흠모하고 존경하는 형님의 책이 나왔다. 이야기의 골개는 네팔의 석청을 구하러 가는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나까네 무아를 복용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기실 그들이 찾아다닌 풍광은 아무런 번잡도 없이 오로지 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들만 놓인 소박한 풍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홍성 형님은 이로부터 히말라야에 매료되어 이듬해 인도 라다크, 그 이듬해 티벳 등을 다니다가 급기야 네팔 카투만두에서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열고 9년간을 지내게 된다. 형님은 ‘오지탐험 여행가’라는 타이틀도 있다. 젊은 시절 강원도 홍천의 내면 땅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고 한다.

    네팔의 풍경만큼이나 조미료기가 없는 담박한 문장은 한 줄씩 읽을때마다 그대로 피가되고 살이되는 느낌이다. 지금은 경기도 포천 땅 명성산 기슭에서 칩거하고 있다. 세월을 어쩌랴 조실이라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허공한 헤어스탈에 등도 조금 굽었지만 형님은 여전히 소년이다. 술 한잔 걸치면 걸직하게 나오는 그 소탈한 웃음과 호탕한 목소리를 기억하자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에 드리운 우울의 커튼이 걷어지는 느낌이다. 머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한 소년들이 있다.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시를 쓰고 글을 쓰며 지낸다. 몇 년 춘천에 계실 때 막걸리를 더 마셨어야 했다는 후회야 나의 몫이겠지만도 가끔 찾아가 보는 걸로 땜빵을 해야제. 형님의 안녕과 건필을 기원한다.~^^,

  4. 트리술리의 물소리/
    잠시 집을 비웠다가 왔더니 책 한 권이 와 있다.
    ”트라술리의 물소리”
    아우, 향산 김홍성이 보낸 ”김홍성 사진에세이”란 부제가 붙은 책이다. 그가 이 책을 출간했다는 건 얼마전 그의 페북을 통해 보고 나도 축하의 덕담을 달았다.
    향산은 이태 전에 크게 앓았고 다행히 어려운 수술을 잘 견뎌 지금은 몸의 회복에 힘쓰고 있다.
    그가 아프기 전에, 그런 사실을 알기 전에 책의 출간을 준비해 왔는데 털컥 큰 수술까지 받게 되어 접었던 것인데 그 때의 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 책이 나오고 그 책을 보내온 곳이다.
    향산은 한 때 고철이란 이름?으로 십 년 가까이 히말라아 자락을 헤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나도 그 덕분에 몇 차례 히말의 설산과 붉은 라리그라스와 쏟아지는 별떨기를 보기도, 앓기도 했다.
    이 책은 고철이란 이름으로 히말 자락을 헤매던 한 풍경을 그의 눈과 감성으로 사진과 글을 담은 책이다.
    그가 높고 먼 산자락의 방랑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 ”고철”이란 이름은 히말 설산과 함께 깊이 접어두고 대신 고향의 낮고 포근한 산에 마음 두라는 바람에서 ”향산(鄕山)”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는 흔히 시인이라는 족속이 스스로의 나약함을 숨기려고 괜한 객기를 부리는 것처럼 오랜 날들을 용감한 척하며 지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엔 더 없이 여린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사람과 풍경 속에서 그의 따스한 시선과 가슴이 느껴진다.
    그와 동행한 몇번의 히말 트레킹에서 나는 하산하기 전에는 금주라고 그에게 다짐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약속을 어찌할 수 없어 힘들게 참고 견디다가 목표했던 곳에 다달았을 때, 나에게 자신은 이제 더 견딜 수 없으니 가는 길은 혼자 먼저 내려가야겠다며 양해 구하던 간절한 그 눈빛이 문득 떠오른다.
    유난히 뚱바와 락시를 좋아했던 그의 히말 시절 또한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이 책은 그 때의 한 풍경 속 기록이기도 하다.
    내 바람은 향산아우가 다시 원기와 건강을 회복해서 숨가쁜 설산은 오르지 못하더라도 그 자락 어디 쯤에서 뚱바 통을 함께 비우며 쏟아지는 별들과 끊임없는 계곡 물소리를 밤새워 듣고 싶다.
    인연 닿는 페친들도 구독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은 날이다.

  5. 트리술리의 물소리”
    오늘 아침 나는 소중한 보물같은 작은책을 보았다.너무 기쁘다.
    작가 김홍성님의 속살이 훤히 비치고있다.
    참 행복하다.
    노순의 경지에서,맘씨좋은 시골 할아범같은 그 마음이 따뜻하고 평화스럽게 트리술리의 물소리가 되어 전해진다.
    사랑해요 산정호수할아범!☆☆☆☆☆☆

  6. 노인 하나 세상을 떠나면, 대도서관 하나가 화재로 사라진 것과 같다고 한다.
    지난 주, 내 도서관에 2권이 입고되었다.

    1. 저자 한 분은 선배님으로 설산 바닥을 내 집처럼 지냈던 분이다. 표지 안쪽 저자 소개에는 ”영구귀국”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책을 통틀어 유일한 부적합 부적절 단어로 여겨진다. 영구라니? 영구, 영원, 이런 단어는 사내들에게는 금기어가 아닌가. 더구나 귀국이라니, 어디가나 이불 펴는 곳이 본국이기로 마음먹고 사는 사내들에게 자발적 폐쇄적 표현을 툭! 던지시다니.
    책 안의 내용은 물론, 찡한 사진 등등, 다른 흠집을 전혀 잡을 수 없어, 영구 + 귀국을 붙잡고 늘어진다.

  7. 담백하다. 좋지 아니한가. 정녕이든 너무든 아주든 부사가 생략돼 과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좋지 아니한가. 목적 없는 여행기는 지루하다. 목적이 추상적이면 더욱이 지루하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내려놓기, 낯선 삶의 동경 따위는 감흥이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트리술리의 물소리』는 나까네 무아, 석청을 찾아 떠나는 네팔기행이다. 목적이 절로 웃기되, 아무튼 구체적이다. 좋지 아니한가.
    12월이고, 일본은 하시모토 류타로가 총리로 있던 시절이다. 아베가 지랄하는 시절은 아닐 때다. 이 땅은 그럭저럭 조용하던 때다. 김 씨, 박 씨, 황 씨, 권 씨는 네팔로 간다. 복 받은 자들이다.
    복 받은 자들은 가트랑에서 석청을 구한다. 복 받은 자들은 네팔의 소주 격인 럭시를 타서 그 석청을 마신다. 석청이 온몸에 퍼진다. 일시적 충격이지만 그들은 골로 갈 지경에 이른다. 12월24일, 바깥은 눈이 내리고 있다. 죽어도 좋지 아니한가.
    어쩌고저쩌고해도 『트리술리의 물소리』 미덕은 절제에 있다. 담백한 문장은 단숨에 나오지 않는다. 몇 번씩 곱씹어야 나오는, 감정을 절제한 부러운 문장이다.

  8. 홀로 방랑하며 사진을 찍고 그 속에 담긴 ”서정적” 기억을 기록한 책을 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장을 펼쳐들게 되었다. 아, 우연히도 연달아 읽은 두 사진 에세이가 풍경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대조적이었는지.ㅎㅎㅎ 특별한 효험이 있다는 석청을 찾아 네팔의 산골 마을을 헤매는 한국 아저씨들, 닭을 삶아 먹고, 밤마다 네팔식 막걸리인 창을 (퍼)마시고, 하필이면 네팔 사람들이 사람은 못 먹고 가축이 아플 때만 먹인다고 하는 나까네 무아를 찾아 이 마을 저 마을로 수소문 하며 헤매다니는 그들. 늑대 소년 무리의 방황기를 보는 듯한 느낌, 홀로 치즈와 와인을 맛 본 뒤 총각김치와 막걸리로 느끼한 속을 씻어내는 뒤풀이를 한 느낌이기도 했다. 재밌어서 한 달음에 읽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선명한 풍경들,
    ” 눈은 이제 오지 않는다. 풀밭이 나오고 거기 염소를 풀어 놓은 소년이 풀 짐을 베고 누운 채 울고 있다. 선잠을 깬 것일까. 선잠을 깨서 본 세상이 낯설어서 우는 것일까.
    박하사탕을 하나 까서 입에 넣어 준다. 소년은 울음을 그친다. 땟국이 흐르는 얼굴이지만 박하사탕을 입에물고 설산을 바라보는 눈망울은 소나기 지나간 하늘처럼 서늘하다. 한참 오다가 돌아서서 소년이 있던 곳을 바라보니 그쪽 하늘에 독수리가 날개를 넓게 편 채 떠 있다. 머리에 왕관 같은 것을 썼다. 다시 한참을 걸었는데도 그 독수리가 시야에 그대로 있다.”
    비행기 타고 먼 나라로 떠나는 일에 이제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음에도, 이런 장면들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그곳이 그리워졌다. 도대체 누가 이 많은 돌계단을 놓았을까, 궁금해 하며 랄리구라스 꽃 그늘 아래서 가쁜 숨을 고르던 그곳.

  9. 선생님, 책장을 덮으니 트리술리의 물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요. 더운 공기로, 간밤의 빗소리로. 책에 있던 단어들은 몇 년 전 선생님 계신 우음산골에서 보았던 색색의 룽따가 있던 풍경과 겹치기도 합니다. 선잠에서 깨어 울던 아이의 입에 넣어준 박하사탕이 내 입에서 굴러다니고요. 이곳은 더운데 트리술리의 물소리 따라 겨울여행을 하고 온 것 같아요. 길모퉁이마다 돌아보면서요. 책이란 건 참 신기해서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 가본 것처럼 나를 데려다 놓네요. 길 위에서 멈춘 불도저가 된 것 같고, 그곳에서 물소리를 따라 다시 걷게 만드니까요. 읽는다기보다 책 속을 걷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이 찾아나선 나까네 무아를 맛본 그 새벽, 무게도 없는 눈송이일 뿐인 싸락눈이 가한 충격으로 물처럼 전율하는 몸 부분을 읽는데 ‘치소’, ‘아 치어’라는 셀파의 단어가 튀어나왔어요. 고통과 공포가 사라진 다음날의 고요는 ‘따또’!
    몸은 좀 어떠신가요? 소가 아플 때 먹는다는 나까네 무아, 혀에 한 방울, 딱 한 방울 얻어먹고 싶어지는, 여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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